2007년 11월 17일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이한우씨 군주열전 6번째이자 그 마지막 시리즈
원래 계획은 7군주였지만 중간에 영조는 정조에게 끼친 폐해가 많아서 하기 싫어졌다라는
이유와 함께 영조에 대한 이야기는 매장되었다.(개인적으로는 요즘 불고 있는 정조 광풍에 편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이한우씨의 군주열전 시리즈는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의 왕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다
동생과 자신의 처남과 쿠데타 동지까지 매몰차게 쳐버린 냉혈의 군주 태종을 조선의 길을 연 과감성의 주인공으로
해동의 요순이자 조선의 기준을 세우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500년 대계를 세웠지만 후계문제에서는 어설펐던 세종
경국대전을 완성한 누구나 알고 있는 성군이지만 실상은 조선이라는 유산만을 방탕하게 사용한 성종
역사상 최강의 찌질이 충신은 물론 아들조차 의심하고 또 의심했지만 자신의 수신과 제가에는 성공한 선조
조선 희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는
그러나 조선시대 그 어떤 왕도 뛰어넘는 절대 왕권을 행사했던 숙종
계혁의 상징 한국에 꼭 필요한 리더쉽의 주인공이라고 알고 있는 정조
그러나 이한우씨는 이 책에서 정조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한다
비록 게혁의 상징이지만 정조는 조선을 망하게한 세도정치의 시발점이었다.
정조가 바란것은 계혁 그러나 정조의 계혁은 보수의 시각으로 바란 계혁
어디까지나 조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한 최후의 중세인이지만 최초의 근대인은 될 수 없는 인물
정조 말 그대로 바른 인간이다 수신과 제가에는 성공한
그러나 치국과 평천하에는 실패한 아카데미즘의 전형이라고 평한다
실제 정조는 여색은 가까이 한 인물도 아니요 사냥으로 비판을 받은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말빨과 학식으로 스스로 군사임을 자처한 뛰어난 머리의 인물이었다(세손때 읽을 책은 다 읽었다라고 말할 정도니)
시대를 꿰뚫는 시각과 대책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오히려 생각이 많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를 내다볼 수 없기에 지레짐작으로 포기한것이다
환국을 단행하지니 자신이 조절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싸우자니 자신에게는 트라우마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소모적인 권력투쟁에만 매달린다
무엇보다 정조의 정치체계를 확립한것은 정조와 무던히도 싸웠던 노론이다
즉 정조의 시호에서도 나오지만 정학(정통 성리학)을 굳건히 믿었다 이미 성리학의 발상지인 중국은
다른 여러문호를 받아들여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던 이때에 정조는 너무 늦게 태어나버린 왕이 아닐까?
무엇보다 정조는 천주교로 대표되는 서학을 멀리한다 (부분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사를 돌보지 않을때는 안경을 쓰면서도 대전에 나갈때는 부끄럽다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다.
이는 정조의 서학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움직이지 않는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결국 외척중심의 개각을 단행하지만 자신이 처음에 시도했던 정치의 퇴색을
불어일으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그러다가 숙종부터 내려오는 특유의 유전병인 화병에 시달리다가 훙하고는 자신의 개혁의 상징은 무참히 지워진다
물론 병명을 할 수도 있다
국가의 힘을 소진시킨 화성건설은 사실 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인과 시파(국왕파)를 중심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단으로(단지 아버지와 자신의 경호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병력이다)
서학거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되려는 두려움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의 고약한 유산을 내치지 못하고 그대로 안고간 비운의 군주
즉위 후 10년간 쿠데타에 그뒤 14년간은 권력투쟁에 시달리는 암울한 군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지지 못한 마인드 부족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유분단의 결단력
그렇다고 정조가 암군은 아니다 분명 새로운 세상을 바라고 자신의 후손들이 보다 잘 살기를 바란 군주임은 분명하다
급히 만들진 티가 팍팍나기는 하지만 정조 열풍의 시대에 필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정조는 세종과는 많은 대척점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왕이라도 공론이 없으면 신하를 움직일 수 없는 제한적인 왕권의 나라였다
세종은 이점은 십분 활용하여 대신들과 토론의 토론의 거듭하는 뒤에서 미는 정치를 한 반면에
정조는 규장각과 초계문신을 설립하여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어 노론 벽파와 싸우는데 급급한
앞에서 끄는 정치를 했다
세종은 성품이 느긋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태종이 물려준 정치적 유산을 적절히 이용했다
그에 비해 정조는 고립무원에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은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만을
위협하는 그런 유산만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정조는 즉위초반에 외척을 철저하게 몰락시키고 아버지의 원한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바람에
대신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화합의 정치가 아닌 배척의 정치를 한것이다
원래 계획은 7군주였지만 중간에 영조는 정조에게 끼친 폐해가 많아서 하기 싫어졌다라는
이유와 함께 영조에 대한 이야기는 매장되었다.(개인적으로는 요즘 불고 있는 정조 광풍에 편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이한우씨의 군주열전 시리즈는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의 왕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다
동생과 자신의 처남과 쿠데타 동지까지 매몰차게 쳐버린 냉혈의 군주 태종을 조선의 길을 연 과감성의 주인공으로
해동의 요순이자 조선의 기준을 세우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500년 대계를 세웠지만 후계문제에서는 어설펐던 세종
경국대전을 완성한 누구나 알고 있는 성군이지만 실상은 조선이라는 유산만을 방탕하게 사용한 성종
역사상 최강의 찌질이 충신은 물론 아들조차 의심하고 또 의심했지만 자신의 수신과 제가에는 성공한 선조
조선 희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는
그러나 조선시대 그 어떤 왕도 뛰어넘는 절대 왕권을 행사했던 숙종
계혁의 상징 한국에 꼭 필요한 리더쉽의 주인공이라고 알고 있는 정조
그러나 이한우씨는 이 책에서 정조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한다
비록 게혁의 상징이지만 정조는 조선을 망하게한 세도정치의 시발점이었다.
정조가 바란것은 계혁 그러나 정조의 계혁은 보수의 시각으로 바란 계혁
어디까지나 조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한 최후의 중세인이지만 최초의 근대인은 될 수 없는 인물
정조 말 그대로 바른 인간이다 수신과 제가에는 성공한
그러나 치국과 평천하에는 실패한 아카데미즘의 전형이라고 평한다
실제 정조는 여색은 가까이 한 인물도 아니요 사냥으로 비판을 받은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말빨과 학식으로 스스로 군사임을 자처한 뛰어난 머리의 인물이었다(세손때 읽을 책은 다 읽었다라고 말할 정도니)
시대를 꿰뚫는 시각과 대책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오히려 생각이 많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를 내다볼 수 없기에 지레짐작으로 포기한것이다
환국을 단행하지니 자신이 조절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싸우자니 자신에게는 트라우마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소모적인 권력투쟁에만 매달린다
무엇보다 정조의 정치체계를 확립한것은 정조와 무던히도 싸웠던 노론이다
즉 정조의 시호에서도 나오지만 정학(정통 성리학)을 굳건히 믿었다 이미 성리학의 발상지인 중국은
다른 여러문호를 받아들여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던 이때에 정조는 너무 늦게 태어나버린 왕이 아닐까?
무엇보다 정조는 천주교로 대표되는 서학을 멀리한다 (부분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사를 돌보지 않을때는 안경을 쓰면서도 대전에 나갈때는 부끄럽다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다.
이는 정조의 서학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움직이지 않는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결국 외척중심의 개각을 단행하지만 자신이 처음에 시도했던 정치의 퇴색을
불어일으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그러다가 숙종부터 내려오는 특유의 유전병인 화병에 시달리다가 훙하고는 자신의 개혁의 상징은 무참히 지워진다
물론 병명을 할 수도 있다
국가의 힘을 소진시킨 화성건설은 사실 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인과 시파(국왕파)를 중심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단으로(단지 아버지와 자신의 경호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병력이다)
서학거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되려는 두려움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의 고약한 유산을 내치지 못하고 그대로 안고간 비운의 군주
즉위 후 10년간 쿠데타에 그뒤 14년간은 권력투쟁에 시달리는 암울한 군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지지 못한 마인드 부족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유분단의 결단력
그렇다고 정조가 암군은 아니다 분명 새로운 세상을 바라고 자신의 후손들이 보다 잘 살기를 바란 군주임은 분명하다
급히 만들진 티가 팍팍나기는 하지만 정조 열풍의 시대에 필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정조는 세종과는 많은 대척점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왕이라도 공론이 없으면 신하를 움직일 수 없는 제한적인 왕권의 나라였다
세종은 이점은 십분 활용하여 대신들과 토론의 토론의 거듭하는 뒤에서 미는 정치를 한 반면에
정조는 규장각과 초계문신을 설립하여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어 노론 벽파와 싸우는데 급급한
앞에서 끄는 정치를 했다
세종은 성품이 느긋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태종이 물려준 정치적 유산을 적절히 이용했다
그에 비해 정조는 고립무원에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은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만을
위협하는 그런 유산만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정조는 즉위초반에 외척을 철저하게 몰락시키고 아버지의 원한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바람에
대신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화합의 정치가 아닌 배척의 정치를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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